신체 건강한 젊은이가 군대에 가야하는 이유는 나라를 위해서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런데 여덟 살 꼬마가 초등학교에 가야하고, 6년 뒤에 중학교에 가야하는 이유도 나라를 위해서라고 한다면 고개를 끄덕이기 쉽지 않다. 우리가 힘들게 공부해서 얻은 지식이나 부는 우리의 몫이지 나라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인은 사회의 부조리를 찾아내고, 부자는 사회의 부를 늘린다. 아무리 사회에 관심이 없는 지식인일지라도 제 밥그릇과 관련된 사회의 부조리마저 못 본체 하지는 않을 것이며, 아무리 구두쇠인 부자일지라도 세금마저 안 낼 수는 없다. 교육이 나라를 위해 국민이 해야 하는 ‘4대 의무’에 들어가는 것도 그래서다.
우리가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 학교에 가려는데 학교가 없다면 우리는 의무를 다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나라가 학교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이고, 학교를 만드는 것이 나라여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의무가 나라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라는 국민이 4대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도와줄 의무가 있다. 이것은 의무이지 복지가 아니다. 이것을 복지라 부르면 국민의 4대 의무도 국민이 나라를 위해 베푸는 ‘4대 시혜’가 된다.
때문에 나라는 국민이 교육이라는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학교를 만들고 선생님을 모셔 와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나라의 의무에 왜 급식이 포함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군대가 군인에게 무료로 밥을 주는 이유와 같다. 군대에서 식사를 거른 군인을 전투력 저하를 야기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처벌하는데서 알 수 있듯이, 군대가 군인에게 무료로 밥을 주는 이유는 군인이 먹는 밥이 국방이라는 의무를 수행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학생이 먹는 밥도 그렇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급훈으로 걸려 있는 교실이 많다는데서 알 수 있듯이, 학생이 먹는 밥은 그들이 교육이라는 의무를 수행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면 나라의 의무인 무상급식이 차등시행이 아닌 전면시행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부잣집 아이들의 급식비를 아껴서 다른 일에 효율적으로 써서는 안 되는 이유는 의무에는 효율이 끼어들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신체 허약한 젊은이도 군대에 보내며, 공부가 적성이 아닌 아이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 신체 허약한 젊은이가 총검술을 하는 일이나 공부가 적성이 아닌 아이에게 국영수를 가르치는 일이 효율 면에서는 떨어지더라도 그들이 나라를 지키고, 교육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효율을 말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이다.
결국 의무교육을 받는, 교육이라는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모든 아이에게 밥을 주는 일은 나라의 의무다. 이를 두고 보편적 복지니, 선별적 복지니 하는 것은 ‘짬밥’을 나라가 베푸는 복지라고 부르는 것과 다름없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나라의 나태를 눈감아 주는 것과 다름없다. 의무를 다하지 않는 일과 복지를 덜 베푸는 일은 다르고, 부잣집 아이나 그렇지 않은 집의 아이나 교육이라는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같다.




덧글